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 (문단 편집) === 고트 전쟁 === 클라우디우스가 황제에 오를 무렵, 로마 제국은 고트족의 대대적인 침략에 직면했다. 267년, 고트족은 여러 게르만족과 함께 500척의 배를 이끌고 흑해 연안에 침략해 수많은 해안 도시들을 황폐화시키고 비잔티움과 시지쿠스를 파괴했다. 그들은 수개월 동안 지중해에서 날뛰며 수많은 재물과 포로를 약탈하고 본토로 돌아간 후 이듬 해에 재차 침입했다. 하지만 작년에 고트족 해적들에게 호되게 당했던 로마군은 이번에는 해군을 제때 투입해 그들을 저지했고, 육로로 쳐들어온 고트족 역시 네스토스 강 근처에서 달마티아 기병대의 공격으로 3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철수했다. 네스토스 전투에서 고트족을 격퇴한 갈리에누스는 아우레올루스의 반란을 진압하러 이탈리아로 떠났다. 그 사이, 고트족은 재차 대규모 침략을 감행해 발칸 반도를 휩쓸며 수많은 인명을 살해하고 재물을 약탈했다. 한편 갈리에누스는 암살되었고 그 뒤를 이은 클라우디우스는 아우레올루스와 추종자들을 모조리 처형한 뒤 고트족을 토벌하러 발칸 반도로 향했다. 서기 269년, 클라우디우스는 나이수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고향이기도 하다. 여담으로 나이수스에서 클라우디우스 2세가 대승으로 거두고 그 공로로 존칭까지 받은 탓에 콘스탄티누스 1세 생전부터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와 대제의 가문의 인연을 연결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4세기 이후 기록에서는 클라우디우스 2세와 콘스탄티누스의 플라비우스 가문이 친척이라는 주장이 나오게 됐다고 한다.]에서 기병대를 매복한 후 고트족을 유인한 후 방심한 적을 습격했다. 훗날 로마 제국 황제에 오르는 [[아우렐리아누스]]가 이때 기병대 지휘관으로서 맹활약했다고 한다. 이 전투에서 고트족 5만여 명이 살해되거나 포로가 되어 노예 시장에 팔렸다고 한다. 살아남은 고트족들은 마케도니아로 탈출했지만 로마 기병대의 끈질긴 추격과 식량 부족으로 고통받아 여러 병사들이 굶어죽자 하에무스 산맥으로 숨었다. 이에 클라우디우스는 하에무스 산맥을 포위했고, 고트족은 로마군에게 포위된 채 추운 겨울을 보내는동안 기근과 전염병에 시달린 끝에 대다수가 사망하고 일부 전사들만 살아남아 로마군에게 투항했다. 로마 원로원은 이 승리에 감격하며 클라우디우스에게 '고티쿠스'란 존칭을 바쳤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